
이 산문은 편지의 형식을 빌린다. 밤에 대해 쓰려면 밤에 쓰게 되고, 밤에 쓴 글은 자꾸 누군가에게 말을 걸게 되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 자리에는 당신을 적는다. 늦게까지 깨어 있는 날의 당신이라면 더 좋겠다.
당신에게. 오늘은 명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밤이 되면 세상은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명도가 낮아집니다. 같은 방, 같은 골목이 낮은 명도로 다시 그려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색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윤곽이 남고, 윤곽만 남은 것들은 이상하게 낮보다 정직해 보입니다. 낮의 책상은 해야 할 일들의 좌판이지만, 밤의 책상은 그냥 나무 한 장입니다. 저는 그 시간의 책상을 좋아합니다.
밤에는 생각도 명도가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걱정은 윤곽이 진해지고, 오래된 기억은 세부가 뭉개진 채로 커집니다. 밤에 쓴 편지는 아침에 읽으면 부치기 어렵다는 오래된 농담을 아실 겁니다. 저는 그 농담을 좋아하는데, 밤의 글이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밤의 글에는 밤의 명도가 배어 있고, 아침의 눈은 아침의 명도로 그것을 읽습니다. 노출값이 다른 두 장의 사진처럼 서로 어긋나 보이는 것이지요. 어느 쪽이 진짜냐고 물으신다면 둘 다라고 적겠습니다. 다만 같은 필름의 다른 인화라고.
그래서 요즘 저는 밤의 생각을 지우는 대신 명도를 적어 둡니다. 이 문장은 새벽 두 시의 문장. 이 결심은 자정의 결심. 그렇게 적어 두면 아침의 내가 그것을 반품하지 않고, 노출을 보정해서 읽어 줍니다. 밤에만 보이는 것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낮의 소음에 가려져 있던 작은 소리들, 미뤄 둔 질문들, 창밖의 골목이 실은 꽤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 같은 것. 그것들을 낮의 언어로 전부 번역할 필요는 없다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밤은 몇 시쯤 명도가 가장 낮아지는지요. 그 시간에 보이는 것을, 저는 여기서 조금 궁금해하고 있겠습니다.
추신. 이 편지는 새벽 한 시에 쓰고 정오에 다시 읽었다. 반품하고 싶은 문장이 두 개 있었지만, 명도를 보정해서 그대로 둔다.
다음 여백
다음 산문은 다시 읽기에 관한 것입니다. 이 편지의 추신이 잠깐 해 본 일을, 그 글은 하루 내내 해 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 장면
A Selvora Original · Mina Seo
Selvora 편집팀의 하우스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