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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작2화NEW

부치지 않은 편지들

자물쇠 없는 서랍에 부치지 않기로 한 편지들이 쌓인다. 사월의 사과, 유월의 작별, 그리고 세 번째 문장이 없는 편지.

문진문구의 밤
우표 없는 편지 봉투들이 쌓인 반쯤 열린 책상 서랍을 그린 잉크 담채 삽화

문진문구의 책상 서랍에는 자물쇠가 없다. 규칙은 하나뿐이다. 자기가 쓴 것만 도로 가져갈 수 있다. 주인은 서랍을 열지 않는다. 정리할 때도 봉투째로만 만진다. 그래서 그 안의 문장들을 아는 것은 쓴 사람들과, 이 이야기뿐이다.

이야기는 서랍을 열 수 있다.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다. 오늘 밤은 세 통만 꺼내 읽는다. 순서는 쌓인 순서다.

사월에 들어온 편지. 받는 사람, 김도영.

도영아. 자리 바뀌고 나서 우리 서먹해진 거, 나는 짝수 달마다 한 번씩 생각해. 그때 네 필통 떨어뜨린 거 나였다? 근데 애들이 웃어서 나도 그냥 같이 웃었다. 그게 다야. 그게 다인데 삼 년째 이러고 있다. 시험 끝나면 말할게. 이 편지는 연습이야.

연습이라고 쓰인 편지는 서랍에 유난히 많다. 본편은 대개 서랍 밖에서, 말로 이루어진다.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서랍은 그 뒤를 모른다. 뒤를 모르는 것이 서랍의 일이다.

유월에 들어온 편지. 받는 사람, 골목 귀하.

사십 년을 얻어 살았습니다. 담벼락에 아이들 키를 재던 금이 아직 있는데, 어느 금이 어느 애 것인지는 이제 저도 모릅니다. 이사 가는 집엔 엘리베이터가 있답니다. 무릎은 편해지겠지요. 골목아, 나는 네가 계단이 많아서 좋았다. 오르막이어서, 집에 가는 일이 매일 조금씩 수고로워서, 그 수고가 좋았다. 안녕히.

받는 이가 사람이 아닌 편지는 반송될 일도 없다. 그래서 어떤 편지는 처음부터, 받을 수 없는 상대에게 쓰인다. 부칠 수 없다는 것과 쓸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서, 사람들은 쓴다.

시월에 들어온 편지. 받는 사람 자리가 비어 있다.

몇 번을 고쳐 써도 세 번째 문장에서 막힌다. 첫 문장은 미안하다는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변명이 아니라는 말인데, 세 번째부터는 자꾸 변명이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세 번째 문장이 없는 편지는 그 뒤로도 계속 들어왔다. 같은 글씨체였다. 어떤 달은 두 통, 어떤 달은 걸렀다. 겹치는 문장은 조금씩 줄었다. 가장 최근 것은 두 번째 문장이 바뀌어 있었다. ‘변명이 아니라는 말도 변명 같아서 지웠다.’

여름에 교복 입은 손님이 다시 왔다. 서랍 앞에 한참 서 있다가, 사월의 편지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주인은 계산대에서 연필을 깎고 있었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자기 것을 도로 가져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이, 규칙의 나머지 반이다.

그 편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서랍은 모른다. 말이 되었는지, 도로 연습이 되었는지. 다만 서랍이 한 통만큼 가벼워졌고, 가벼워진 만큼의 일이 서랍 밖 어딘가에서 있었거나, 없었다.

맨 위에는 아직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편지가 한 통 놓여 있다. 받는 사람, 아버지. 주소는 없다. 이 서랍에서는 언제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음 여백

세 번째 이야기는 계산대 안쪽의 공책, 주인이 밤마다 적는 재고 목록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 장면

A Selvora Original · Mina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