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인 세탁소의 건조기는 26분을 준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어중간하다고 생각했다. 뭘 시작하기엔 짧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길다.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26분은 어중간한 게 아니라 정확하다. 뭘 시작할 수 없을 만큼 짧아서, 사람을 그냥 앉아 있게 만드는 데 정확히 필요한 길이.
지난주에는 건너편 의자에 앉은 남자가 26분을 어떻게 쓰는지 나도 모르게 지켜봤다. 휴대폰을 세 번 꺼냈다 넣고, 세제 자판기에 붙은 설명문을 끝까지 읽고, 남은 시간은 유리문 안에서 도는 빨래를 봤다. 나는 그 순서가 어쩐지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다림을 견딘다기보다, 기다림 앞에서 차례로 뭔가를 내려놓는다. 휴대폰을, 읽을거리를, 그다음에야 겨우,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꺼낸다.
답장이 오지 않는 메시지의 기다림에는, 건조기와 달리 끝나는 시간이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계기판을 만든다. 읽음 표시를 확인하고, 마지막 접속 시간을 확인하고, 확인한 것을 후회한다. 나에게도 그런 저녁이 있었다. 궁금했던 것은 답장의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보낸 말이 그 사람의 하루에서 몇 번째로 밀려 있는지, 그 순번이 궁금했다.
그 순번을 알 방법은 없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내가 뭘 하는지는 알 수 있다. 어떤 날은 청소를 했고, 어떤 날은 안 하던 운동을 했고, 어떤 날은 그 사람의 옛 메시지를 위로, 위로 거슬러 읽었다. 같은 기다림인데 손이 하는 일은 매번 달랐다. 기다림은 시험이 아니라 거울에 가까운 것 같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보다, 기다리는 동안 손이 어디로 가는지가 그날의 나를 더 많이 보여 준다.
물이 끓기까지의 3분은 기다림 중에서 가장 짧은 축인데도, 나는 그 앞을 잘 지키지 못한다. 불 앞을 떠나 딴 일을 하다가 같은 물을 두 번 끓인 날을 세지 못한다. 3분을 못 서 있는 사람이 26분은 앉아 있는다. 이상한 일이다. 아마 세탁소의 26분에는 내가 개입할 방법이 없고, 냄비의 3분에는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개입할 수 있다는 착각 앞에서 기다림은 제일 어려워진다.
그러니 기다림을 잘하는 법 같은 것을 나는 모른다. 아는 척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요즘은 기다리게 되는 날마다 작은 관찰을 하나씩 챙긴다. 오늘의 나는 휴대폰을 몇 번 꺼냈는지. 내려놓은 순서는 어땠는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눈까지, 몇 분이 걸렸는지.
건조기 유리문 안에서 빨래는 계속 돈다. 26분의 마지막 몇 분, 세탁소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대체로 비슷하게 풀어져 있다. 각자 다른 것을 기다리다가 같은 표정에 도착한 사람들. 기다림의 내용은 그렇게나 다른데, 기다림의 끝은 가끔 이렇게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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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산문은 물건들 차례입니다. 오래 쓴 물건이 주인에 대해 조용히 알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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